겨울과 고양이
- 어려서 불리던 이름인 '꼬꼬마'. 이제는 다 큰 고양이이지만 아직도 '꼬꼬마'로 불리고 있다.
고양이 한마리를 돌보고 있다.
전에 병아리를 한번 키워 본적있고, 진돗개를 키워보긴 했는데, 고양이와 같이 지내는 건 처음이다.
길 고냥이를 보면, 사람을 경계하고 민감해하는 것 같아서,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길러보니 생각보다 쉽다.
밥도 자기가 배 고플때만 먹어서 밥 그릇이 비워지면 그냥 다시 주기만하면되고, 야행성이라 그런지 낮에는 잠을 많이 잔다.
대변 소변도 모레에 봐서 치울 일도 별로 없다.
고양이를 기르며 불편한 점이 있다면, 털이 날리는 것 하나인 것 같다.
아침 저녁에 솔로 열심히 문질러 주어도 손으로 쓰다듬어 주면, 털이 푹푹 나온다.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면 바지가 고양이 털로 하얗게 변해버린다.
그래서 요즘은 바지를 늘 걷고 지낸다.
그리고 발톱으로 여기 저기 긁지는 않을까 했는데, 스크래치판과 긁을 기둥을 하나 주니 거기만 열심히 긁어서, 따로 어떤 것을 긁고 그러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고양이 기르는 것이 약간 어색해서 밥과 물, 간식만 잘 주며 관찰만했지만, 시간이 지나 좀 익숙해져 털 빗질도 해주고,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어찌 놀아줘야는 것인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자동으로 움직이는 벌레 모양의 장난감을 켜주기도 하고, 털이 달린 막대기로 머리를 툭툭치기도 한다.
그렇게 장난을 치면 손으로 막대기를 잡으려 발버둥을 한다.
레이저 불빛을 비추어 이리 저리 움직이면, 레이저를 따라 혼비백산 뛰어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귀여워서 손으로 만져주면 갑자기 귀찮다는듯 구석으로 숨어버리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손을 뻗으면 후다닥 도망가기도 한다.
먼저와서 몸을 비비던 친근함을 가지고도 있는 반면,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피해 버리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집에서 사는 고양이도 이렇게 사람을 잘 피하기도 하는데, 길에 사는 고양이들과 친해지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 많이 가까워지기는 했다.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진 요즘.
길을 걷다가 고양이를 보면, 따뜻한 방 한켠에 누워 잠을 자고 있을 '꼬꼬마'가 생각난다.
꼬꼬마에게 겨울은 단지 베란다로 나가는 문이 봉쇄되어지는 답답함만 추가될 뿐이지만, 길에 사는 고양이들은 겨울을 더욱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겨울의 시련과 같은 것 같다.
살기위해 살아가는 사람과 살다보니 살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작은 동물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모습이 떠올라 겨울은 더욱 춥기만 하다.
어쪄면 적용된다기 보다는 그것이 그저 살아가는 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큰 귀찮음이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이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변하듯,
길 고양이를 보며 느낀 동정심이 그저 수많은 세월의 찰라일뿐이라는 생각으로 변한다.
왠지 내 마음 또한 겨울이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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