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신라 말기의 정치 변동과 호족 세력의 성장1. 신라 말기 - 키워드 : 내물계 진골, 선종, 최치원, 난, 호족(1) 선덕왕 - 김양상 (내물계)1) 귀족연합정권 2) 상대등, 부군직 부여
(2) 원성왕 (785)1) 무력으로 왕통승계 - 무열계 김주원 추대에 김경신이 즉위 (김주원은 강릉으로 퇴거하여 지방 호족이 됨)2) 5묘제 쇄인3) 독서삼품과(독서출신과) - 관료양성 : 성적에 따라 관리를 임명 → 실패
4) 근친 왕족 중심 운영(3) 애장왕 (800)1) 불사 창건 금지 2) 12도에 사신 파견(4) 헌덕왕 (809)1) 애장왕 살해 - 상대등 김언승2) 초적봉기 (818)3) 김헌창의 난 (822) - 백제지역, 국호 장안, 연호 경운
☞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과 관련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 약화의 계기가 된 사건4) 김범문의 난 (825) - 평양(5) 흥덕왕 (826)1) 청해진 (828) - 장보고 : 대사 임명
2) 지방세력 성장 - 당성진 설치 (829) / 사찬 중위제3) 집사부를 ‘집사성’으로 개칭4) 사치금지령(6) 민애왕 - 김우징이 살해(7) 신무왕 (김우징)(8) 문성왕 (839) - 장보고의 난
(9) 경문왕 (861) - 숭문대, 서서원 설치 → 측근 중심 걔혁 정치를 위해(10) 진성여왕 (887)1) 정치해이2) 원종•대노의 난 (889)3) 양길, 기휜, 견휜 세력 봉기
4) 적고적의 난 (896) - 붉은 바지(11) 효공왕 (879) - 궁예, 견휜(12) 신덕왕, 경명왕, 경애왕 - 박씨 성(姓)도 즉위(13) 경순왕 – 멸망2. 진골들의 왕위 쟁탈전(1) 무열계의 몰락
(2) 왕위 쟁탈전의 전개 : 혜공왕이 죽고 상대등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며 신라 하대 시작(3) 지방에 대한 통제 약화1) 김헌창의 난 (822) – 무열계인 아버지 김주원이 내물계 원성왕에 밀리자 원한
➝ 헌덕왕 때 [국호 장안 (長安)], [연호 경운(慶雲)]으로 하고 반란“무진주, 오나산주, 청주, 사벌주, 4주 도독과 국원경, 서원경, 금관경의 사신과 여러 군현, 수령을 위협해 자기 소속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2) 김범문의 난 (825) - 김헌창의 아들로 고달산(여주)에서 난 ➝ 실패(4) 귀족 연합 정치 운영 : 시중보다 상대등의 권력이 큼3. 진골 귀족의 모순(1) 골품제도의 모순 : 불교, 화랑도를 잊음
(2) 국가 재정의 압박 : 귀족의 녹읍4. 농민의 몰락(1) 대토지 소유 확대(2) 수취 체제의 모순(3) 민란의 발생 : 원종과 애노의 난 (상주) = 진성여왕 시기
* 수정 : 박스의 장보고의 난 = (흥덕왕) → (문성왕)
* 수정 : (10) 진성여왕 = 원종 대노의 난 → 원종 애노의 난
* 수정 : (11) 효공왕 = 879 → 897
* 수정 : 1) 김헌창의 난 = 오나산주 → 완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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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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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호족 세력의 성장(1) 성격 : 지방 행정, 군사권 장악, 경제적 지배, 스스로를 성주 또는 장군이라 칭(2) 유형1) 중앙 귀족 출신 : 김주원, 김순식2) 촌주 출신 : 자기 지역
3) 해상 세력 : 작제건, 왕건, 장보고4) 군진 세력 : 장보고 (무력, 재력_5) 초적 세력 : 양길, 궁예 (농민, 하층민 중심)(3) 6두품과 제휴 고려 왕조 건설 (x- 진골과 제휴) ➝ 최언위, 최승우 ➝ 왕건, 견휜에게 귀의
(4) 골품제도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함(5) 선종과 풍수지리설 등을 기반으로 삼았다.6. 사원의 폐단 – 많은 농장∙노비 소유7. 6두품의 개혁(1) 새로운 유교 정치 이념, 과거제도 제시 (최치원 - 시무 10조)
(2) 신라 하대 반신라적 성향(3) 신라 하대에는 진골 중심체계에 도전하였지만 그 비판은 소극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T) 신라 말기 6두품이 중앙 정계의 요직을 장악하였다? (X)
8. 복합적 사상의 유행- 풍수지리설, 선종, 도교, 노장 사상, 최치원 4산 비명
중대 (무열왕 ~ 혜공왕) 하대 (선덕왕 ~ 경순왕)왕위 세습 진골 (무열계 직계) 진골 (내물계 방계)정 치 1) 왕권의 전제화2) 집사부 시중 세력 강화
3) 6두품의 정치적 진출 (국왕의 조언자)4) 상대등 약화5) 귀족 숙청 - 김흠돌의 모역 사건 1) 귀족 연합 정치 (왕권 약화)2) 집사부 시중 세력 약화3) 6두품 세력 약화 (반신라적)
4) 상대등 세력 강화5) 왕위 쟁탈전 : 김헌창의 난지방 행정 1) 9주 5소경 (지방 행정 조직)2) 9서당 10정 (군사조직) 1)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 약화 (지방 분권화)
2) 농민 반란(초적) : 원종, 애노의 난사 회 1) 중앙 집권화2) 골품 제도 1) 지방 분권화2) 골품제 동요토지 제도 관료전, 녹읍폐지, 정전, 녹읍부활 녹읍소유, 농장 확대
문 화 1) 화엄종 (교종)2) 조형 미술 발달, 귀족 중심 문화3) 유교 정치 이념 확립 : 국학 1) 선종, 풍수지리설 : 호족, 6두품2) 조형 미술 쇠퇴) 호족 중심, 소박한 문화
“진성왕 3년(889) 나라 안의 여러 주∙군에서 공부(貢賦)를 바치지 않으니 창고가 비어 버리고 나라의 쓰임이 궁핍해졌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독촉하였지만, 이로 말미암아 곳곳에서 도적이 벌 떼같이 일어났다. 이에 원종∙애노 등이 사벌주(상주)에 의거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왕이 나마 벼슬의 영기에게 명하여 잡게 하였다. 영기가 적진을 혀다보고는 두려워하여 나아가지 못하였다.” – 삼국사기 (원종 애노)
“국내 여러 주군이 공부를 납부하지 않으므로 국고가 고갈되어 국용이 궁핍해졌다. 이에 왕이 사자를 보내어 독촉하니 도적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때 원종과 애노 등이 사벌주를 근거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 삼국유사 (원종 애노)
“당나라 19대 황제 (소종, 889~904년)가 중흥을 이룰 때, 전쟁과 흉년 두 가지 재앙이 서쪽(당)에서 멈추어 동쪽(신라)으로 왔다. 어디고 이보다 더 나쁜 것이 없었고 굶어 죽고 싸우다 죽은 시체가 들판에 즐비하였다.”
– 해인사 묘길상탑기“진성왕 10년 (896) 도적이 서남쪽에서 일어났다. 붉은 바지를 입고 특이하게 굴어 사람들이 붉은 바지 도적이라 불렀다. 그들은 주현을 무찌르고 서울(경주) 서부 모량리까지 쳐들어와 민가를 약탈하였다.”
– 삼국사기 (적고적)
768 - 대공의 난770 - 96각간의 항쟁774 - 김양상 (선덕왕) 정권 장악780 - 김지정의 난 (실패)809 - 한덕왕 즉위822 - 무열왕의 후예 김헌창의 난825 - 김범문의 난 (김헌창의 아들)
838 - 김우징, 김양의 반란839 - 김우징이 신무왕으로 즉위846 - 장보고의 난 (흥덕왕)889 - 원종•애노의 농민군 사벌주 봉기 (진성)896 - 서남 지방에 적고적(赤袴賊)이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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