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동족 의식 : 고려 태조는 발해의 왕자 대광현 우대Ⅳ. 발해의 발전1. 영역 확대2. 발해의 성장(1) 무왕 (대무예, 719~737, 8세기 초) - 인안1) 영토확장
2) 당과 대립 : 산둥지방 등주 (덩저우) 선제공격 (장문휴의 수군), 요서 마도산까지 진출→ 당은 개복순, 대문예(망명), 김사란(신라)으로 발해 공격3) 신라와 대립 - 신라의 축성 건조 (강릉)4) 흑수부 말갈과 대립 (주의 - 흑수부 말갈을 이용하여 당을 공격 X)5) 일본에 국서(2) 문왕 (대흠무, 737 ~ 793) - 대흥
1) 당과 친선 2) 신라와 관계 개선 : 상설 교통로 개설 ➝ ‘신라도’ : 함흥 ~ 덕원3) 수도 천도 : 중경 → 상경 → 동경4) 발해 국왕으로 격상5) ‘고려국’표방, 불교의 전륜성왕이념, 황상칭호
6) 일본의 신라 정벌 계획에 참여7) 딸 - 정혜•정효 공주cf) 이 때 신라는 경덕왕(3) 선왕 (대인수, 818 ~ 830, 9세기 전반) - 건흥1) 영토 확장 : 말갈족 복속, 요동으로 진출
(목저주, 현도주 설치)2) 지방 제도 완비 : 5경 15부 62주3) 중흥기 : 해동성국 (海東盛國)4) 중앙관제 정비5) 주자감 설립cf) 상경 용천부, 중경 현덕부, 서경 압록부, 동경, 용원부,
남경 남해부, 철리부, 솔빈부(말), 정리부, 부여부, 장령부(4) 애왕 – 멸망 (거란 침입) (926)[발해의 영역]3. 발해 정치의 특징(1) 독자적 연호1) 중국과 대등함 강조, 왕권의 강대함
2) 대조영(천통), 무왕(인안), 문왕(대흥), 선왕(건흥)(2) 왕권의 전제화 : 관료 조직의 성격, 장자 상속제 Ⅴ. 발해의 대외관계1. 당과의 관계(1) 8세기 초반 (무왕)
1) 산동반도 (덩저우, 등주) 공격 2) 돌궐•일본과 연결(2) 8세기 후반 (문왕) - 친선2. 통일 신라와의 관계(1) 경쟁관계1) 등제 서열 사건 : 우열 경쟁 (당 빈공과 합격) – 오소도 vs 최치원
2) 쟁장 사건 : 당의 견제 정책 (당에 간 사신이 서로 상석에 앉기를 다투게 됨)3) 당의 요청으로 신라는 발해를 공격했으나 성과 없이 퇴각하였다.(2) 교섭관계 : ‘신라도’ (新羅道) (길)
(3) 신라 원성왕, 헌덕왕 때 발해에 사신을 파견3. 일본과의 관계 : 우호4. 돌궐과의 관계 : 친교5. 발해의 멸망 : 귀족의 권력 투쟁 = 거란의 확대 (926) 통일 신라 발해
7세기 1) 무열왕 : 백제 멸망, 진공 왕위 세습2) 문무왕 : 고구려 멸망, 당 축출3) 신문왕 : 14부 완비, 관료전 지급, 녹읍폐지, 9주5소경,9서당 19정, 귀족숙청, 만파식적 1) 고구려 멸망 (668)
2) 대조영 : 진 건국 ➝ 발해 (천통)8세기 1) 성덕왕 : 정전2) 경덕왕 : 녹읍 부활3) 선덕왕 : 내물왕게 즉위 (하대시작)4) 원성왕 : 독서삼품과 시행 1) 무왕 : 당과 대립, 산둥 공격,
2) 문왕 : 당과 친선, 상경 천도,중앙 관제 정비, 주자감 설치9세기 진덕여왕 : 최치원의 시무 10조 선왕 : 해동성국, 최대 영토, 말갈 복속,요동진출, 지방행정구역 정비
10세기 1) 후백제 건국 (900)2) 후고구려 건국 (901)3) 고려 건국 (918) * 애왕 : 거란에 멸망 (926)
1. 야율아보기 - 부여성 점령, 홀한성 포위 → 애왕 대인선 항복2. 동란국 - 야율배3. 발해유민 저항 - 요양 등4. 후 발해 (927)(1) 홀한성, 오씨 정권(2) 정안국 병합 (979)
(3) 후 당과 교섭 - 후 당에 고정사, 성문각 등 사신(4) 멸망 1003 - 올야 정권의 공격5. 열씨 정안국6. 흥요국(1029) - 대연림 - ‘요양’에서 1년7. 대발해국(1116, 융기) - 고영창 → 실패
8. 고려로 유민 망명 - 대광현 등“대조영은 본래 고구려 별종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은 가족을 이끌고 영주로 옮겨와 살았다. 만력 통천 때(696)에 거란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켰다. 대조영은 말갈족장 걸사비우와 함께 각각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망명하였다. ~ 측천무후가 장군 이해고에게 토벌케 하였다. 이해고는 먼저 걸사비우를 무찌르고 천문령(天門嶺)을 넘어 조영을 뒤쫓았다.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 무리를 연합하여 대항하였다. ~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동으로 가서 계루부 옛 땅을 차지하고 동모산(돈화)에 성을 쌓고 살았다. 대조영이 굳세고 용맹스러우며 용병을 잘하자 말갈 및 고구려 잔당이 점점 모여들었다.” – 구당서
“왕은 오래도록 대(大)씨를 성으로 삼았다. 상류층 성씨에는 고, 장, 양, 둥, 오, 이씨 등 불과 몇 가지밖에 되지 않았다”. – 송막기문1) 일본속기 : 문왕이 스스로를 고려국왕 대흠무라 불렀다. 고려사신으로 표현
2) 제왕운기 (이승휴) : 대조영을 고구려의 옛 장수라 표현3) 발해고 (유득공) : 남북국사로 인식4) 동사 (이종휘)5) 아방강역고 (정약용)6) 해동역사 (한치윤)7) 조선상고사 (신채호)
8) 백두산 정계비고 (장지연)9) 대동지지 (김정희)(X –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cf) 대야발 (대조영 아우) – ‘단기고사’를 지음
soy 한국사, 소이나는, desert.story.com, 님아이건노이라요
* 수정 : (3) 선왕 5) 주자감 설치를 → (2) 문왕으로 이동 (주자감 : 문왕이 설치)
(위에 표에서 수정합니다. ^^;;)
7세기 3) 신문왕 9서당 19정 → 9서당 10정)
9세기 진덕여왕 → 진성여왕
(찾아 주신 결눈님 감사합니다.~)
soy 한국사
(http://desert.tistory.com by 소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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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발해의 건국과 성격1. 배경(1) 고구려 유민의 당에 대한 저항 - 고선지, 이정기, 이사도(2) 당의 민족 분열 정책1) 소고구려국 건국 (회유적) : 포로인 보장왕의 아들 고덕무을 요동 도독으로 임명 (친당적 국가)
2) 영향 : 하지만 오히려 동족 의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론(3) 거란 반란 - 이진충 → 조홰 살해2. 건국(1) 대조영 (고왕, 698 ~ 719)1) 7세기 말, 돈화시 동모산
2) 국호 = 진(震), 연호 = 천통 ➝ 국호 변경 = 발해 (713)3) 천문령 전투 - 거란 이해고를 물리치고 건국4) 돌궐, 신라와 통교5) 당과 통교 - 대문예(둘째 아들) 파견, 발해 군왕 홀한 주도독으로 임명
(2) 남북국 형태 (최초 인식 ➝ 유득공 「발해고」)3. 성격(1)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x- 거란) “발해는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나라이다. 사방 이천 리이며 주현이나 관역이 없다. 곳곳에 마을이 있는데 모두
말갈부락이다. 백성에는 말갈이 많고 토인이 적다. 토인이 촌장이 되었다. 큰 촌락은 도독이라 하고 다음 크기는 자사라 한다. 그 아래는 백성들이 모두 수령이라 부른다.” – 유취국사
(2) 고구려 계승 의식1) 건국 주체 세력 : 고씨2) 일본에 보낸 국서 : 고구려의 옛 땅 수복, 고려국왕, 천손이다.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3) 당나라 ‘빈공과’에 응시 한 것 : 빈공과는 외국인이 응시하는 것, 발해는 당과 다른 나라라는 표시(3) 고구려 문화 계승 : 온돌, 와당, 불상, 굴식 돌방무덤의 모줄임 구조(정혜공주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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