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국학 연구 확대1. 17세기 이후의 역사 지리(1) 이수광 (광해군, 1614) = 지봉유설 [芝峰類說] - 중국과 대등 (중국, 일본, 유럽 내용)(2) 홍여하 1) 휘찬여사 [彙纂麗史] (인조, 1639) a. [기자 → 마한 → 신라]가 정통국가 : 삼한 정통론 b. 편년체2) 동국통감제강 [東國通鑑提綱] (현종 1672) a. 편년체, 왕권 강화를 강조b. 붕당 정치의 폐지를 역설, 남인 사이에 가장 추앙(3) 유계 (현종, 1667) = 여사제강 [麗史提綱]1) 서인의 북벌론을 합리화2) 고려가 북방 민족에게 항전한 사실 강조 3) 강목체(4) 허목 (현종, 1667) = 동사 [東事]1) 남인 입장, 자연환경, 풍속, 인성의 독자성을 강조2) 신성한 제왕인 인후한 정치를 편 단군, 기자, 신라를 중국의 삼대에 비유할 만한 시상 시대로 그려냄2. 18•19세기의 역사학 연구 - 실증주의 중시, 민족주의적 사관(1) 홍만종 = 동국역대총목 (東國歷代總目) : [단군 → 기자 → 마한 → 통일 신라]가 정통국가 : 단군 정통론(2) 임상덕 = 동사회강 (東史會綱]) : 여사제강을 계승, 단군과 기자에 대한 고증 첨가(3) 이익 -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려 함(4) 안정복 (남인)1) 동사강목 (東史綱目)a. 동사회강에 영향 받음b. 이익의 역사관의 영향을 받음c.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考異를 부록에 추가d. [고조선~고려 말]까지 역사 = 독자적 정통론 체계화 = [단군 조선 - 기자 조선 - 마한 - 통일 신라 - 고려]☞ 종래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탈피 (X- 조선까지)☞ “삼국사에서 신라를 으뜸으로 한 것은 신라가 가장 먼저 건국되었고, 뒤에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하였으며,고려는 신라를 계승하였으므로 편찬한 것이 모두 신라의 남은 문적을 근거로 하였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강대하고 현저함은 백제에 비할 바 아니며 신라가 차지한 땅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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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남쪽에 불과할 뿐이다.” 2) 열조통기 (列朝通紀) : 태조 ~ 영조의 역사 서술한 편년체로 역사만 다룬 사서3) 이익의 의식을 계승4) 성리학적 사관 5) 고증 사학의 토대 마련6) 천주교 비판(5) 이긍익 =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1) 야사를 참고로 왕조의 정치사를 실증적, 객관적 입장에서 서술, 정치. 문화2) 백과사전식3) 기사본말체4) 동이족 자부심, 양명학적 (6) 한치윤 = 해동역사 (海東繹史)1) 민족사 인식의 폭을 넓힘 (X- 성리학 전통론)2) 외국 자료 인용 (500여권)3) 기전체 cf) 성리학 전통론에서 써진 서적 : 여사제강, 동사회강, 동사강목, 동국통감 등(7) 이종휘 1) ‘동사’ (東史)a. 단군, 기자, 삼한, 후조선(위만)을 본기로 하고 세가, 열전, 연표, 지를 두어 사대적 명분을 뒤집는 본격적인 기전체형식b. 체계적 정리는 아니고 고조선사를 중심으로 삼국 시대를 연결시키는 국사의 맥락을 추적하는 입장의 서술c. 단군-기자•마한-고구려의 삼한 정통론적 입장을 취했으면서도, 단군 - 부여 - 고구려의 연결성도 존중하여,고구려는 단군의 혈통, 세력과 기자의 문화를 동시에 계승하였음을 주장d. 대종교에 영향e. 부여, 발해를 우리 역사로 인식2) 신채호 - 조선 후기 역사가 중 가장 주체적인 사람은 ‘이종휘’이다.(8) 유득공 1) 발해고 - 발해사 “부여씨가 망하고 고씨가 망한 후 ~ 대씨가 북방을 점령~”2) 서얼, 규장각 검사관(9) 김정희 = 금석과안록 (金石過眼錄) -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10) 박주종 – 동국통지 (東國通志) (1868) : 단군 ~ 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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