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8. 항일 독립 전쟁 (신민회, 남만주, 삼원보, 경학사, 밀산부 한흥동, 신한촌, 중광단, 대한독립단, 동제사, 신규식, 신한 혁명당, 대동 단결 선언, 신한 청년단, 부민단, 서로 군정서, 한족회, 대한 독립군, 대한 광복군 정부, 대한 국민의회, 이상설, 성명회, 권업회, 구미 위원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홍범도, 대한 통의부, 3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미쓰야 협정, 보천보 전투, 민족 혁명당, 한국광복군)
항일 독립 전쟁
Ⅰ. 독립운동 기지의 건설
1. 신민회의 활동
2. 독립운동 기지의 설치 목적
(1) 항일 독립운동 거점 마련
(2) 무장 독립 전쟁 수행 (간도, 연해주)
T) 중국 동북지역과 연해주지역에서 독립운동기지 건립이 추진되어 1910년대 전반경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T) 독립군기지 건설은 국내에 남은 운동가들이 대거 체포되어 건설자금 조달이 어려워져서 점차 한계에 부딪쳤다.
T) 1911년 간민교육회를 설치하였고 명동학교, 정동학교 등 민족주의 교육기관과 대전학교라는 무관교육기관을
건립하였다.
3. 독립 운동 기지
(1) 남만주, 삼원보 - 이회영, 이상룡
1) 경학사, 대한독립단
2) 신흥무관학교, 서로 군정서
3) 부민단, 한족회
(2) 밀산부 한흥동 - 이상설, 이승희
(3)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 대한 광복군 정부, 대한 국민의회, 성명회, 권업회
(4) 용정 - 대한국민회, 명동학교, 서전서숙
(5) 왕청 - 북로군정서, 중광단
☞ <대한독립단> - 국내진공작전계획 (양서지방)
“지나 유하현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도총재 박장호, 부총재 조맹선, 총단장 김기한 등이 영솔한 독립단은 종래
평안북도 강안 일대에 출몰 횡행하던 중인데 본년 4월 이래로 그 독립지단을 각 도에 설치하고 조선 내지에
있는 청년회를 합하여 전선일치로 일제히 무력운동을 일으킬 계획을 하고 이미 평안남도에서 착수하여 점차로
각 도에 미치고자 하는 것을 동도 제삼부에서 탐지하고 9월 3일에 간부 이발영 외16명을 검거하여 무서운
음모를 발견 방지하고, 동월 19일 취조를 마치고 그 사건을 관할 검사국에 보내었다더라.”
Ⅱ. 한인의 국외 이주와 독립운동
1. 국외 이주
(1) 19c 중엽의 국외이주 - 연해주, 간도 - 열악한 경제
(2) 을사조약 이후 - 정치적 망명
(3) 국권강탈 (1910) 후 - 경제, 교육, 독립전쟁
2. 중국 지방의 독립운동
(1) 동제사 (1911) - 상해
1) 신규식, 박은식, 조소앙, 신채호
2) 중국 국민당 인사까지 참여
3) 박달학원 - 청년교육
(2) 신한 혁명당 (1915) - 북경
1) 신규식, 박은식, 이상설, 조소앙, 박용만
2) 대동 단결 선언 (1917)
a. 공화주의 국민주권설에 입각하여 임시정부 수립을 주장한 최초의 문서
b. 우리 국민은 공동 운명체이다.
c. 독립운동을 둘러싸고 분파 투쟁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줌
d. 해외동포가 정치적 대표기관ㅇ르 조직하여야 한다. (x- 국내에 조직하여야 한다.)
☞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즉 우리 국민 동지에 대한 묵시적 선위니 우리 동지는 당연히
삼보(토지, 인민, 정치)를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 또 대통을 상속할 의무가 있도다. ~
이같이 면면히 계승하던 삼보를 상속한 자는 완전한 통일 조직을 기다려 비로소 그 권리 의무의 행사가
가능할지니 작은 명리에 골몰하여 백년대계를 방해하면 이는 부모를 잃은 아이가 밤·대추에 부모상을
잊음과 같도다.”
(3) 신한 청년단 (1919) - 상해
1) 김구, 박은식, 여운영, 김규식, 장덕수, 조동호, 김철, 선우혁
2)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에 영향,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 파견
3) 독립청원서 작성
(4) 대동보국단 (1915 상해) - 신규식, 박은식 , 이동휘 - 잡지 : '진단'
3. 만주 지역의 동포
(1) 남만주 (서간도)
1) 경학사 (1910) → 부민단 (1912) → 한족회 (1919)
2) 경학사 - 이회영, 이시영 - 신흥 강습소 설치 (1911 최초의 자치기구)
3) 부민단 - 신흥 학교(1912), 백서 농장
4) 한족회 - 국내 진입위해 , 신흥무관학교 (1919)
5) 서로 군정서 (1919) - 보약사 (1913)를 확대시켜 박장호, 백삼규 등이 주도
6) 광복군총영 (1920) - 임시정부 직속
7) 대한국민단 (1921)
8) 대한통의부(1922)
9) 육군 주민 참의부 (1924)
10) 정의부 (1924)
cf) 광한단 (1920) - 이시열, 현정경
(2) 북간도
1) 중광단 (1911) - 대종교 중심 → 후에 김좌진의 ‘북로군정서’로 개편 → 사관양성소
2) 대한 국민회 (1919) - 간민회(1913)에서 변경
3) 대한 독립군 (1919) - 홍범도
4) 군무 도독부 - 최진동
5) 무오독립선언 (1913)
6) 서전서숙 (1906) - 이상설
7) 명동학교 (1908) - 김약연
8) 대한독립군단 (1922)
9) 신민부 (1925) soy한국사
(3) 북만주 밀산부
1) 한흥동 (1909) - 이상설
2) 한민학교 (1909)
(4) 수난
1) 간도참변 (경신참변) - 소련 적색군의 공격
2) 미쓰야 협정 (1925)
3) 만보산 사건 (1931, 만주사변 직전) → 한·중을 이간질, 정치조작
a. 길림성 장춘현 만보산 농장을 이승훈이 조차하여 공사 하던 중 중국인 농민과 분쟁이 나자
일본에서 이 사건을 과장하여 의도적으로 확대
b. 사건이 국내 신문에 과장 보도되자 중국인을 박해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c. 일본은 만주 침략에 이용
d. 안재흥 등이 진정을 위해 노력
*종교계 1) 대종교 - 북로군정서 / 2) 개신교 - 대한 신민회 / 3) 천주교 - 의민단 |
4. 연해주 이주 동포
(1) 한민회 (1905) - ‘해조신문’
(2) 13도 의군(1910) - 유생 의병장인 유인석, 이상설
(3) 성명회 (1910) - 유인석, 이상설, “광복 날까지 피의 투쟁”
(4) 권업회 (1911) - 이종호, 이상설, 홍범도 →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
(5) 대한 광복군 정부 (1914)
1) 임시정부의 탄생의 계기
2) 정통령 - 이상설 / 부통령 - 이동휘
3) 블라디보스토크
(6) 대한 국민의회 (1919) - 한족회 중앙 총회가 정부형태로 개편 (노령 임시 정부)
(7) 1920년대 : 볼세비키 정권 후 ‘자유시 참변’ 등으로 약화
(8) 1930년대 - 강제 이주 (중앙아시아) (1937)
(9) 한인단체 결집시도
1) 전로한족회중앙총회 (1917)
2) 10월 혁명 (1917) - 이동휘 석방
3) 한인사회당 (1917, 하바로프스크) - 문덕 중학교, 집지 ‘자유종’ → 고려공산당 (1921)
5. 미주 이주 동포
(1) 교민 단체의 결성
1) 하와이 - 신민회(1903), 한인합성협회 (1907)
2) 본토 - 공립협회 (1905) / 흥사단 (1913, 안창호 LA) - ‘동광’ 잡지 발행 ➝ 한국지부 - 수양동우회
3) 대한인 국민회 조직 (1910) - ‘신한민보’ / 박용만, 이승만
4) 대조선 국민 군단 (1914) - 박용만, 하와이
5) 구미 위원부 (1919) - 이승만, 임시정부 외교 사무소, ‘한국평론’ - 월간지
6) 한인소년병학교 (1909)
(2) 멕시코 - 숭무학교
6. 일본 이주 동포
(1) 최팔용 - 조선 청년 독립단 → 2.8 독립선언 발표
(2) 조선인노동동맹회 (1922) / 북성회 (1922) / 일월회 (1925) / 조선여자 삼월회 (1925)
cf) 관동 대학살 - 지진 때 유언비어로 일본의 조선인 피해
* 이상설 1) 서전서숙 (1906) - 북간도 용정, 최초의 민족주의 교육기관 2) 헤이그특사 (1907) - 이상설, 이위종, 이준 등이 을사조약의 무효를 밝힘 3) 권업회 (1912) - 이상설, 이종덕 / 블라디보스토크 / 무장조직의 성격을 감추기 위해 실업을 권한다는 뜻 4) 대한광복군정부 (1914) - 대통령 이상설, 부통령 이동휘 / 블라디보스토크 / 만주에 사관학교 설립 5) 신한혁명당 (1915) - 이상설,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박용만, 조소앙 |
- soy 한국사
Ⅲ. 독립군의 항일 전쟁과 시련
1. 국외의 독립군 부대 활동
(1) 만주 - 대한 독립단, 서로 군정서, 북로 군정서, 대한 독립군, 국민회군, 태극단, 대한 통의부
(2) 연해주 - 신민단, 경비대, 혈성단
(3) 미국 - 국민 군단, 비행사 양성소, 소년병 학교
2. 독립 전쟁
* 봉오동 → 훈춘사건 → 청산리 → 간도참변 → 대한독립군단 → 자유시참변
→ 3부 성립 → 미쓰야 협정 → 3부 통합운동 → 혁신의회 → 한중연합
(1) 봉오동 전투 (1920. 6)
1) ‘삼둔자’에서 패배 후 일본이 봉오동을 기습
2) 홍범도 ‘대한 독립군’ + 안무 ‘국민회 독립군’ + 최진동 ‘군무 도독부군’ - 대승
(2) 청산리 전투 (1920. 10. 10.)
1) 훈춘 사건 조작 (일본)
2) 김좌진 ‘북로 군정서’ 등
3) 백운평 전투, 완루구 전투, 천수평 전투, 어랑촌 전투
3. 시련
(1) 간도참변 (경신참변) - 1920. 10.
(2) 자유시 참변 (1921)
1) 대한 독립군단 조직 (밀산부) - 홍범도, 서일, 김좌진
2) 자유시 참변 - 소련으로 이동, 적색군(소련) vs 백색군 (반혁명군) 중 적색군을 도움
3) 이용만 당하고 강제 해산
☞ 홍범도
1) 1910년 간도로 감
2) 자유시참변을 모면하고 이르쿠츠에가 적군에 편입
3) 레닌에게 훈장과 권총을 받음
4)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5) 1943년 시베리아에서 사망
☞ “촌락은 차례차례 매일 조직적으로 소각 당하고 청년들은 사살되었다. 장암동에서는 높이 쌓아올린 곡물에
방화하고 촌민들에게 집 밖으로 나올 것을 명령하였다. 촌민들이 밖으로 나오면 늙은이든 어린이든 눈에
띄는 대로 사살하였다. 총알을 맞고도 죽지 않은 사람은 짚을 덮고 불로 태웠다. 새로 만든 무덤을 세어보니
31개였다. 다른 두 마을을 방문하였다. 우리들은 불탄 집 19채와 무덤 또는 시체 36구를 목격하였다. 용정에
돌아오니 일본 병사들이 술에 취해 있었다.” <간도참변>
☞ 「용정촌에서 40리가량 떨어져 있는 한 마을은 왜군이 야간에 습격하여 청년을 모조리 죽였으니 밤마다 죽는
사람이 2, 3명씩 되었다. 이는 1920년 10월의 일이다. 당시 참사를 현지에 있던 미국인 선교사 마틴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0월 31일, 연기가 자욱하게 낀 찬랍파위 마을에 가 보았다. 사흘 전 새벽에 무장한
일개 대대가 이 기독교 마을을 포위하고 남자라면 늙은이, 어린이를 막론하고 끌어내어 때려 죽이고 ~”」
<한국민족운동사, 조지훈> ➝ 장안동 참변
4. 독립군의 재정비
(1) 대한 통의부 (1922) - 남만주
1) 서로군정서 + 대한 독립단
2) 공화주의 vs 복벽주의로 분열 - 다시 분열 (1923) - 통의부,의금부
(2) 3부의 조직
1) 육군 주만 참의부 (1923 ~ 1927) - 백광운 (임시정부 직할)
2) 정의부 (1925 ~ 1927) - 오동진, 지청천
3) 신민부 (1925 ~ 1927) - 김좌진 (간도 참변후 소련 영토에서 되돌아온 독립군이 조직)
4) 성격 - 민주적 민정기관, 군정 설치
5. 미쓰야 협정 (삼실협정, 1925)
(1) 독립군 체포시 보상금
(2) 만주 군벌 장쭤린 과 총독부 미쓰야
☞ “중국 관헌은 각 현에 통고하여 재류 조선인이 무기를 휴대하고 조선에 침입하는 것을 엄금한다.
이를 어긴 자는 체포하여 조선 관헌에 인도한다.”
6. 3부의 통합 운동 (1926, 북경)
(1) 혁신의회 (1928) - 한국독립당, 한국 독립군 결성 (지청천) ← 촉성회
(2) 국민부 (1929) - [만주사변 후] 조선 혁명당, 조선 혁명군 (양세봉) ← 협의회
7. 한·중 연합 작전
(1) 만주사변 (1931) 계기
(2) 촉성회 → 한국 독립군 (지청천) + 중국 호로군
- 쌍성보, 대전자령 전투, 사도하자 전투, 동경성 전투, 경박호 전투 (의란, 아성, 징보, 대순자령 전투)
→ 한국광복군
* 한국독립군 - 기모자진, 김동삼 등이 중심이 된 혁신의회를 개편하여 결성한 군대 조직
(3) 협의회 → 조선 혁명군 (양세봉) + 중국 의용군 - 홍경성 전투, 영릉가 전투 (도보가, 청원, 결석령 전투)
→ 조선의용대 →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 흡수, 통합
(4) 약화 - 일본의 대토벌작전, 중국군의 사기 저하
cf) 양세봉 - 육군주만참의 부소대장, 제3중대장,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cf) 1932 - 푸이를 명복상 원수로 하는 일본의 괴뢰 정부가 만주에 수립
8. 만주사변(1931. 9)과 중일 전쟁 무렵 독립군
(1) 동향
1) 추수투쟁, 춘황 투쟁 (1931)
2) 동북 인민 혁명군 결성 (1933)
a. 한인 항일 유격대 (만주 공산계열) + 중국 공산당 유격대 (중국 공산당 계열 정규군)
b. 동북 ‘항일 연군’으로 개편 (1936) → 조국 광복회 조직 (만주)
(2) 조국 광복회 조직 (1936)
1) 민족 연합 전선 실현 (간도)
2)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결합
(3) 보천보 전투 (1937)
1) 동북 항일 연군 대원에 의해 발생
2) 일제 행정 관청을 태우고 압록강을 건너다 추격하는 일본군에 상당한 피해
3) 이 사건으로 조국 광복회의 국내조직 색출과 만주 지역 독립군에 대한 공세를 펼침
4) 김일성
9. 민족 연합전선의 형성 노력
(1)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1932)
(2) 민족 혁명당 창당 (1935) - 남경
1) 민족 독립운동, 단일 정당, 의열단, 한국독립당, 신한독립당, 조선혁명당, 대한독립당
2) 김원봉 중심의 의열단이 주도하자, 지청천, 조소앙이 탈퇴
3) 조선 민족 혁명당 (1935)으로 개편 - 조선 민족 전선 연맹 결성 (1937) : 사회주의계 통일조직(최창익, 김성숙)
→ (But) 조선 의용대 편성 (1938, 한커우, 우한) : 반소탕전 (1942) → 한국광복군에 합류
* 조선 의용대
a. 부대 - 1개 총대, 3개 분대, 대부분은 조선민족혁명당원, 대일선전 공작, 대일 유격전 수행목적
b. 총대장 - 김원봉 (황포군고나 학교 4기 출신)
c. 일부 대원이 한국광복군에 편입
(2) 전국 연합 진선 협회 (1939)
김구 중심, 임시정부 핵심 - 한국 국민당 (1935) → 민족주의계 : 한국 광복 운동 단체 연합회 (1937, 광복전선)
→ 조선민족 전선과 제휴 (1937)하여 만듦 → (But) 한국광복군 (1940) → 1942 의용대를 흡수
* 한국 광복운동 단체 연합회 - 한국독립당, 대한인국민협회, 조선혁명당
10. 한국광복군
(1) 연합작전 수행
1) 대일, 대독 선전 포고문 (1941 - 태평양전쟁)
2) 연합군으로 영국군과 미얀마, 인도전선 작전 수행
(2) 심리전에 참가 - 회유방송, 포로 심문, 암호번역 등
(3) 국내 진입 작전 계획
1) 국내 정진군의 편성 - 총사령관 - 지청천 / 지대장 - 이범
2) 일본의 항복으로 무산 “왜적이 항복하였다 ~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일 ~” soy한국사
11. 화북 지역의 활동
(1) 화북 조선청년 연합회 (1941)
1) 최창익, 허정숙
2) 무정을 중심으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확대, 개편 → 조선독립 동맹 결성
(2) 조선독립동맹 (1942)
1) 김두봉 (사회주의계), 무장투쟁
2) 민주공화국 목적, 친일 재산 몰수, 8시간 노동제, 남녀평등, 의무교육,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조중 연합
3) 조선 의용군 조직 (1942, 옌안) - 중국 팔로군과 연합작전 수행 - 북한 인민군에 편입 (1949)
T) 무장투쟁 노선을 채택하지 않은 단체는?
1) 국민회군 2) 민족혁명당 3) 조국광복회 4) 화북조선독립연맹 5) 동지회
☞ 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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