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9. 일제 강점기의 사회변화 (일제시대 사회, 형평운동, 이학찬, 조선형평사, 여성운동, 학생운동, 정우회 선언, 조선 민흥회, 민족 유일당 운동, 조선공산당, 화요회, 북풍회, 독립운동, 본정, 1930년대 남산 일대 주택 거리, 1920년대 삼판동 문화 주택, 몸뻬)
일제 강점기의 사회 변화
Ⅰ. 독립운동
1. 독립운동의 세력의 분화
(1) 계기 - 3.1 운동 좌절 후
(2) 민족주의 세력 - 민족 해방
1) 자본주의 국가체계
2) 이상재, 안재홍 - 실력양성 운동 (비타협적)
3) 이광수, 최린 - 민족개량 주의
(3) 사회주의 세력 - 노동자, 농민 = 민족해방 + 계급해방 → 노동 농민 운동, 쟁의
(4)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 운동 - 모두 부정
cf)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 (1928) - 신채호, 이필현, 임병문 (천진)
2. 사회주의 확대
(1) 수용 - 레닌의 약소국 독립운동 지원 약속
(2) 역기능 - 내부의 갈등, 민족운동과 대립
(3) 순기능 - 사회·경제 대중 운동의 활성화 (여성, 청년, 노동자)
(4) 민족 유일당 운동의 대두
(5) 국내 단체
1) 서울 청년회 (1921)
2) 신사상 연구회 (1923)
3) 화요회 (1924)
4) 북풍회 (1924)
5) 조선 사정연구회 (1924)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중심
→ 통합운동 : 고려 공산 청년회, 조선 공산당(1925)
6) 조선학생과학회 - 6·10만세 운동에 중심적 역할
7) 경성학생연맹 (cf 민족주의계 - 조선학생회) soy한국사
* 조선 공산당 (1925)
1. 화요회 (김재봉, 김찬), 북풍회 (김약수, 정운해), 상해파 (주종건)
2. 과정 1차 - 김재봉 (이르쿠츠파, 1925) - 코민테른에서 파견, 북풍회, 화요회 중심 ➝ 박헌영의 공산당 내 고려공산 청년회 (화요회 중심) 조직 “조선의 완전 독립” 신의주 변호사사건으로 해체 (박헌영의 비밀문서) - 1925. 11. 2차 - 강달영 ‘국민당’결성 (조선일보) 1) 코민테른은 서울청년회, 화요회 동시 인정 2) 6·10만세 운동 주도 3) 순종 인산일 격무으로 해체 3차 - 김철수, ML당, 안광청, 신간회 결성 등에 참여 4차 - 차금봉, 반제국주의 혁명노선
3. 사건 1) 12월 테제(1928) “공산당 조직의 어려움은 일제의 탄압에 의한 객관적 조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고질적인 당내분파 투쟁에서 초래되고 있다.” ➝ 인텔리 중심 당 해체와 노동자, 농민 중심 당의 재조직 지령 2) 9월 테제 (1930, 프로핀테른) - 혁명노동운동으로 전환 지시 3) 10월 서신 (1931) - 노동대중 속 혁명 3) 해방 직후 - 노동자, 농민 주축으로 소시민, 지식인과 통일전선 구축 4) 1946년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과 합당하여 남조선노동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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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국외 (1920년대 초)
1) 이르쿠츠크파 고려 공산당 (고려 혁명군) -볼셰비키당에 직결된 조직 (노농 소비에트 건설 목표)
2) 상해파 고려 공산당 (대한 의용군) - 이동휘 등 (민족해방 중시)
T. 1920년대 사회주의 운동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2) 일본 자본주의의 타도를 목표로 하였다. 3) 민족주의자들의 자치운동에 대한 반발이 사회주의 운동의 확산을 가져왔다. 4) 많은 파벌이 존재하였다. X - 공산당 지도부에는 노동자·농민출신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 soy 국사 |
Ⅱ. 민족 유일당 운동 (민족 협동 전선)
1. 배경
(1) 중국의 국공합작 - 중국의 공산당, 국민당 합작을 보며 통합 노력
(2) 북경 촉성회 창립 (1926) - 안창호의 단결 호소
(3) 6·10 만세 운동 (1926)
(4) 조선 민흥회 창립 (1926) - 사회(서울 청년회계) + 민족 (조선 물산 장려회)
(5) 자치론 비판
1) 식미지배 인정 - 이광수, 최린 → 비타협적 세력
2) 자치운동 : 지배를 인정하고 자치권을 획득하자
(6) 식민지에서의 민족협동 운동을 코민테른에서 승인
(7) 민족협동전선 운도온의 대두
(8) 정우회 선언 (1926)
1) 사회주의계
2) 분파 투쟁의 청산, 사상 단체의 통일, 경제 투쟁에서 정치투쟁
3) 신간회 창립의 중요계기
☞ “민족주의적 세력의 대두로 인하여 전개되는 정치적 운동의 경향에 대하여는 그것이 필요적 과정의 한 형세인
이상 우리는 냉연히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할 수 없다. ~ 민족주의적 세력에 대하여는 그 부르주아민주주의적
성질을 명백하게 인식하는 동시에 또 과정적 동맹자적 성질도 충분히 승인하여 그것이 타락하는 형태로
출현되지 아니하는 것에 한하여 적극적으로 제휴하여 대중의 개량적 이익을 위해서도 종래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분연히 싸워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
조선공산당(화요회, 북풍회) → 정우회 |
= 조선 민흥회 → |
신간회 |
민족주의 |
실력 양성운동 (비타협 민족주의, 자치운동) 정우회를 지지 |
2. 신간회 (1927 ~1931)
[일제] 9-1. 신간회 (민족 유일당, 근우회) - 보기 클릭
Ⅲ. 여성 운동과 학생 운동
1. 여성운동
(1) 조선여자 청년회(계몽) (2) 반도여자청년회, (3) 조선여자 교육회
(4) 대한애국부인회 (1919, 평양) - 평등, 문맹퇴치, 구습타파, 생활개선, 기독교계 항일비밀부녀 운동단체
(5) 조선 여자 기독교 청년회(YWCA, 1923) (6) 근우회 (7) 중앙여자청년동맹 (1926)
(8) 조선여성동우회 (1924) - 최초 사회주의적 여성해방론
2. 소년운동
(1) 천도교 - 청년회
(2) 조선 소년 연합회 (1927) - 방정환
(3) 중일 전쟁 후 중단
3. 청년운동
(1) 물산장려운동, 민립 대학 설립
(2) 조선 청년 총동맹 (1924)
1) 사회주의 사상 유입 후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분열된 청년 운동 수습하기 위해 조직
2) 노동·농민 운동 지지
4. 학생운동
(1) 노예교육철폐, 역사, 조선어, 학생회 자치, 언론집회 자유
(2) 광주 항일학생 운동 (1929) (3) 2·8독립선언, 3·1운동
(4) 조선학생대회 (1920) (5) 조선학생회 (1922)
(6) 6·10만세운동 (7) 동맹휴학전개(1927)
Ⅳ. 형평 운동
1. 배경 - 사회적 차별
cf) 도한 - 백정의 다른 명칭
2. 전개
(1) 진주 이학찬 : 조선 형평사 (1923) - 백정의 인권 운동 단체로 시작 사회 각 운동에 적극 참여
☞ “백정은 어떠한 지위와 압박을 받았는가? ~~”
(2) 목표 - 저울처럼 공평한 사회 건설
☞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다. 따라서 우리는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권장하여, 우리도 참다운 인간이 되고자 함이 본회의 취지이다.” <창립취지문 일부>
(3) 조선 형평사 혁신동맹창립총회 (1924, 천안)
3. 민족 해방 운동 성격
4. 변화
(1) 1920말 - 급진파, 온건파 대립
(2) 1930 중반 - 1936 ‘대동사’로 개칭 → 사회주의 계열의 순수 경제 이익 운동
[형평사의 전국 대회 포스터]
Ⅴ.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변화
1. 인구의 증가
[서울] 1920 (24만) → 1940 (93만)
2. 일본인 거리
1) 본정 - 충무로 2) 명치정 - 명동 3) 황금정 - 을지로
4) 청계천의 북쪽은 북촌(한국인), 남쪽은 남촌 (일본인)
[본정 입구]
Ⅵ. 의식주 생활의 변화
1. 의생활
(1) 한식 양식 혼합
(2) 1910 - 가르마, 블라우스, 스커트, 단발머리, 파마, 스타킹
(3) 1940 - 국방색 국민복, 몸빼
[신여성의 옷차림] [국민복 차림의 학생들] [몸뻬]
2. 식생활 - 과자, 빵, 케이크, 스테이크, 수프, 아이스크림
3. 주택
(1) 1920 - 개량한옥 - (사랑방과 문간방이 없음) (2) 1930 - 2층 양옥
(3) 1940 - 영단주택 (4) 변두리 - 토막집
[1930년대 남산 일대의 거리와 주택의 풍경] [1920년대 삼판동 문화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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