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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SOY ♣/포토에세이 Photo Essay

생명의 서에서 설일로... - soy

by 소이나는 201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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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서에서 설일로...


조각상도 그림자 친구와 함께 한다.




오랜만에 시를 읽다가...

전에도 많이 읽었던 시인데 유독 마음을 빼앗아가 버린 시가 한편 있다.

전에 읽었을 때에는 그저 의미 없이 읽고 "멋진 시이다." 정도로 지나쳤는데,

시를 느끼는 것이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 들여지는가 보다.

이번 기회에 오랜 명작의 시를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이번 시에 빠지기 전에는 유치환의 '생명의 서'에 빠져, 뜬금없이 사막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었다.





생명의 서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怯)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이 시는 내게 삶의 갈증 속에 자기 자신을 잃지 말자는 의미로 다가왔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어떠한 삶의 답을 찾지 못하는 순간에 길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형이상학은 형이상학대로 형이하학은 형이하학대로 종교는 종교로 괜시리 쓸모없는 물음들은 모두 작열하는 태양 속에 말라가는 허울뿐인 질문과 답이 없는 물음일 뿐이다.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병든 것은 나인지 세상인지 어쩜 세상에 나와 자연의 순리 속에 역행하는 인간의 모습이련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러한 물질적인 아픔보다는 정신의 나약함에 말라가는 슬픔일 것이다.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자...

그곳에는 어떠한 답이 있기에 사막으로 향하는 가.
극한한 시련과 고난이 존재하는 곳에서 어떠한 삶의 본질을 탐구하겠다고, 사하라 사막도 아니고, 고비 사막도 아니고, 아라비아 사막인 것이냐... 
황폐한 가슴 속에 사막이 되어 버린 너 자신의 사막인 것이냐...
그곳에서 삶의 한계 속에 어떠한 삶의 의욕을 찾아온 것이란 말인가.
내게도 알려주렴...



거기는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아마도 밝디 밝은 백색의 태양은 스스로를 어둠으로 몰아가는 고난의 자신의 반어이리라.
차라리 어둠 속에 혼자 썩어 가는 것보다 작열하는 태양에 몸을 사그리는 고통이 더욱 행복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하늘에는 구름이 둥둥 떠있어 사소한 손짓으로 옷자락에 구름을 담아 보니 한없이 가벼운 거야, 
그런데 사소한 바람이 불면 쉽게 날아가 옷자락도 없이 혼자가 되어버려,
세상은 혼자 왔다가 혼자 떠나가는 것이니까.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게 뭐라고...
이미 생명은 끝이 났지만, 하루 하루를 유예하여 살고 있는 것이 사람인 것인데...
누구나 이미 죽음을 꿈꾸지만 그러질 못해 하루를 살고 있는 것인데...
백지인 생명에 어떠한 의미를 담아도 더렵혀 지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살아야지 아직도 백지이지만 괜히 흠집을 내고 싶다.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백골은 없어 나의 백골은 아직 액체와 고체로 덮혀 있거든...
거기에 이렇게 망상에 사로잡힌 보이지 않는 혼으로 궤변을 늘어놓고 있어.
그러니 어쩌겠어 백골을 쪼이기에는 아직 신께서는 살아가라는 임무를 주셨는데...
한없는 백일이 작열하는 열사의 끝에 호올로 남아 원시를 배우지 못해 살아가는 것을...



그러곤 이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저 나의 흔적을 남겨보려고...
desert.tistory.com 
블로그 주소를 사막으로 만들다니...
'생명의 서'는 그만큼 내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이번에는 '설일'이다.
새로운 시를 만났다.

유치환의 생명의 서는 강인한 생명의 의지와 함이 느껴지는 남성적인 시임에 반해 
김남조의 설일은 여성 특유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표현이 특징인 삶을 받아들이는 따뜻한 느낌의 시이다.
이렇게 대조적인 느낌의 시에 마음이 빼앗긴 것을 보면, 나이가 좀 더 들어 모지지 않고 세상 속에 어울려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아마도 개성을 찾고 싶어 방황하던 때 보다는 좀더 관조적인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 작용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면 생명의 서나 설일이나 그 내용이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단지 사막이 겨울이 되고, 백골이 백설이 되어 버린 묘한 복선에 빠져든다.




설 일  (雪日)

                      - 김남조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두 시 모두 생명의 본질을 찾는 삶의 길을 찾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않다.




겨울 나무와 바람...


입이 떨어져 앙상하게 홀로 남아 정처없이 떠도는 바람만이 지나는 황량한 겨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몸도 차갑고 마음도 차갑다.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혼자가 아닌 게 된다.


부산히 흔드는 바람에 혼자있고 싶었던 나는 함께 하고픈 친구를 만난 것인지,

그저 평온한 마음을 흔드는 마른 가지의 잔바람인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바람과 나무가 함께 하는 긍정적인 전자의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아마도 내게는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눈내리던 날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눈 밭에 외롭게 길을 걷는 발자국이 남아 외로워 신에게 하소연 했다.

"어째서 힘든 삶에 고난 속에 함께 길을 걸어주시지 않으시나요."

하지만 몰랐다. 

그 발자국은 나의 발자국이 아닌 신의 발자국이였다.

고난에 힘든 나를 업고 가는 그대의 사랑이였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았던가.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리랴.

그 임은 하늘에 있는 것인가?

겨울은 가고 어둠던 하늘도 점점 사라져 푸른 빛 생명이 도는 봄이 와 

무거운 고개 오랜 시간 걸려 들어보아 하늘을 이제서야 한번 바라본다.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아마도 나와 그대가 현재 걷고 있는 길은 아름답지만 가파른 돌층계이고 의미는 있지만 거친 자갈밭이리라.

그래서 슬퍼하고, 그래서 아파하고, 수많은 사람 속에 외로움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견디어내고 있는 것이리라...

어떨 때에는 혼자 힘들게, 어떨 때에는 누군가와 함께 이겨내며, 살아가고 숨쉬고 눈물 흘리는 너와 나의 시간은 아마도 혼자 느끼는 고통이지만,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타인의 고통 또한 별반 다르지 않으리...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그래 살아보자. 

하늘은 푸른 날도 있고, 어두운 날도 있고, 그래도 있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나도 아니다. 

Please be patient God is not finished with me yet!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눈물은 고난의 땅 속에 피어난 생명의 시작이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윤동주의 하루 보다 편한 삶을 사는 존재이니...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지 말라는 이육사의 꿈을 보며 살아가는 존재이니...

서(西)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지만, 

오늘 하루는 그네줄을 밀어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날아보고 싶다.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향단이 대신 그넷줄을 밀어다오.




이제는 오랫동안 혼자 중얼거리며 지낼 것 같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 抓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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