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서에서 설일로...
조각상도 그림자 친구와 함께 한다.
오랜만에 시를 읽다가...
전에도 많이 읽었던 시인데 유독 마음을 빼앗아가 버린 시가 한편 있다.
전에 읽었을 때에는 그저 의미 없이 읽고 "멋진 시이다." 정도로 지나쳤는데,
시를 느끼는 것이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 들여지는가 보다.
이번 기회에 오랜 명작의 시를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이번 시에 빠지기 전에는 유치환의 '생명의 서'에 빠져, 뜬금없이 사막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었다.
생명의 서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怯)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설 일 (雪日)
- 김남조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두 시 모두 생명의 본질을 찾는 삶의 길을 찾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않다.
겨울 나무와 바람...
입이 떨어져 앙상하게 홀로 남아 정처없이 떠도는 바람만이 지나는 황량한 겨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몸도 차갑고 마음도 차갑다.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혼자가 아닌 게 된다.
부산히 흔드는 바람에 혼자있고 싶었던 나는 함께 하고픈 친구를 만난 것인지,
그저 평온한 마음을 흔드는 마른 가지의 잔바람인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바람과 나무가 함께 하는 긍정적인 전자의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아마도 내게는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눈내리던 날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눈 밭에 외롭게 길을 걷는 발자국이 남아 외로워 신에게 하소연 했다.
"어째서 힘든 삶에 고난 속에 함께 길을 걸어주시지 않으시나요."
하지만 몰랐다.
그 발자국은 나의 발자국이 아닌 신의 발자국이였다.
고난에 힘든 나를 업고 가는 그대의 사랑이였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았던가.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리랴.
그 임은 하늘에 있는 것인가?
겨울은 가고 어둠던 하늘도 점점 사라져 푸른 빛 생명이 도는 봄이 와
무거운 고개 오랜 시간 걸려 들어보아 하늘을 이제서야 한번 바라본다.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아마도 나와 그대가 현재 걷고 있는 길은 아름답지만 가파른 돌층계이고 의미는 있지만 거친 자갈밭이리라.
그래서 슬퍼하고, 그래서 아파하고, 수많은 사람 속에 외로움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견디어내고 있는 것이리라...
어떨 때에는 혼자 힘들게, 어떨 때에는 누군가와 함께 이겨내며, 살아가고 숨쉬고 눈물 흘리는 너와 나의 시간은 아마도 혼자 느끼는 고통이지만,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타인의 고통 또한 별반 다르지 않으리...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그래 살아보자.
하늘은 푸른 날도 있고, 어두운 날도 있고, 그래도 있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나도 아니다.
Please be patient God is not finished with me yet!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눈물은 고난의 땅 속에 피어난 생명의 시작이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윤동주의 하루 보다 편한 삶을 사는 존재이니...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지 말라는 이육사의 꿈을 보며 살아가는 존재이니...
서(西)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지만,
오늘 하루는 그네줄을 밀어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날아보고 싶다.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향단이 대신 그넷줄을 밀어다오.
이제는 오랫동안 혼자 중얼거리며 지낼 것 같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诗.. 抓住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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