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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 한국사 ※

[독립운동] 8. 병참 기지화 정책 (남면북양, 중화학 공업, 농촌 진흥 운동, 국가 총동원법, 조선 총독 우가키)

by 소이나는 2015.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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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 우가키 – 조선의 장래일본 내지에서는 중공업 부분에 투입할 여공을 모집하는 것이 아주 어렵고 공업용 토지는 아주 비싼 곳을매입해야 한다. 전력 요금도 비싸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어떻든 조선 쪽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 특히 1933년부터 일제와 만주간에 새로운 관계가 발생함으로써 만주산 원료를 이용하는 공업 및 만주에 공급해야 할 제품 공장도 자연히 일본과 만주 사이에 위치하는 조선에 설치하는 것이유리한 점이 많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각종 유리한 조건을 구비한 조선은 자연히 내외 자본가, 기업가의 각축분투의 일대 무대로 변하고, 장래 아주 유리한 공업지가 될 수 있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이와 같은 산업의 발전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조선의 인구 문제를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되는 바 적지 않을것이다.Ⅳ. 1931 ~ 1946 : 병참 기지화 정책 1. 만주사변 이후(1) 남면북양 정책 - 공업원료 증산 정책 (1932)(2) 중화학 공업 강화1) 일본이 한국의 농촌 과잉 인구를 모두 흡수할 목적으로 실시2) 1930년대 경제적 수탈정책의 일환3)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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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광•제철 등 각 분야에서 투자로 식민지화의 기반이 되었다.(X- 우리나라 농민의 남아도는 값싼 노동력을 모두 흡수할 공장이 필요했다.)(3) 농촌 진흥 운동 (1932) - 빈농과 중소농민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회유책, 자작 농지 설정 사업“체제 안정책의 일환이었으며, 빈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 일반을 체제에 순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이 정책의 시행 배경으로 이해되고 있는 농촌 내 활성화는 거주로 말하면 일제와 민족 운동 세력 간의 ‘농민 획득 경쟁’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 일제 스스로는 ‘농가 갱생 계획’ 실시 이후에 ‘식량의 충실’, ‘부채상환’, ‘현금 수지 개선’이라는 이른바 ‘갱생 계획의 3요점’은 많은 실적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4) 조선 소작 조정령 (1932) - 지주에게 유리, 소작인에게 조정 신청권을 부여한 것(5) ‘농지령’ (1934)(6) 공업조사령 (1938) : 조선의 중소공업 통제(7) 궁민 구제 토목 공사사업 개시2. 중일전쟁 이후(1) 국가 총동원법 (1938)(2) 물적 수탈1) 산민증식계획 재개 (1939) - 조선증미계획2) 경제생활 규제 - 가축 증식계획, 식량배급 제도 (1939)3) 태평양전쟁 (1941) : 공출 제도 강화 - 식기, 농기, 교회 종까지 징발 → 무기제작 (1944)(3) 인적 수탈1) 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 (1938)2) 자본유입과 동시에 유출도 급증3) 동원1938 - 자원병1939 - 국민 징용령1943 - 학도지원, 징병제1944 - 징용제, 정신대(4) 중소공업정비요강 (1941), 기업 정비령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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