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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8. 조선 후기 군포, 균역법 (양역 변통론)

by 소이나는 2014.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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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군포 부담의 감소1. 군역 제도의 개편 배경(1) 실시 배경 - 양난 이후 5군영의 성립으로 모병제가 제도화 → 군역을 대신하는 수포군이 점차 증가(2) 군포의 폐단1) 군포의 유용 - 일반 경상비로 쓰여 버림2) 군포의 중복, 차별 징수3) 지방관의 농간 - 백골징포(죽은 자), 황구첨정(아이), 인징(이웃), 족징(친척)4) 군포액의 증가 - 납속이나 공명첩으로 양반이되 면역되는 자가 늘어남5) 농민의 파산과 유망 촉진“정병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로 대립한다. 대립자는 역이 고되어서 값을 많이 받는다. 2개월에 면포 17~18필에 이른다.” - 성종실록 (방군수포의 폐단)“나라의 100여 년에 걸친 고질 병폐로서 가장 심한 것은 양역이다. 호포니 구전이니 결포니 하는 주장들이분분하게 나왔으나 적당히 따를 만한 것이 없다. 백성은 날로 곤란해지고 폐해는 갈수록 더욱 심해지니, ~이웃의 이웃이 견책을 당하고 친척의 친척이 징수를 당하고, 황구는 젖 밑에서 군정으로 편성되고백골은 지하에서 징수를 당하며~” – 균역법2. 양역 변통론 (良役變通論) 의 대두(1) 양역의 폐단으로 농민은 유망이나 피역으로 저항(2) 양역변통론1) 구전론 (口錢論] - 인구 단위로 돈을 징수2) 유포론 (遊布論) - 무위도식하는 자에게 징수3) 결포론 (結布論) - 전결에서 포를 징수4) 균역법이 시행된 배경이 되었다.(3) 농병 일치론 - 유형원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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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토지를 전부 환수해 관리 (→ 양반의 반대)(4) 호포론 (戶布論) -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담 → 양반의 반대로 시행은 못함3. 균역법의 실시 (영조)(1) 실시 - 농민은 1년에 2필씩 내던 군포를 1필만 부담, 결작의 징수    “구전은 한 집안에서 거둘 때 주인과 노비의 명분이 문란해진다. 결포는 정해진 세율이 있어 더 부과하기가 어렵다.     호포나 결포는 모두 문제가 되는 바가 있다. 이제는 1필로 줄이도록 그 대책을 강구하라.” – 영조실록(2) 재정 부족의 보충책1) 결작 - 토지 1결당 미곡 2두 부과2) 선무군관포 [選武軍官布] - 선무군관이란 칭호를 주고 군포 1필을 납부(양인)「양역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명하였다. “구전을 한 집안에서 거두게 되면 주인과 노비의 명분이 문란해진다.결포는 정해진 세율이 있어 더 부과하기 어렵다. ~ 호포나 결포는 모두 문제가 있다. 이제 군포를 1필로줄이도록 하고 감소된 액수를 채울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 = 선무군관포“ 필(疋) 수를 감면시킨 뒤에 백성들이 모두 고무되었습니다만 이것의 폐단이 있으니 성상께서 백성을 위한다는 의의가 어디에 있습니까? ~ 이것에 대한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양반도 아니고상한으로 첨정된 것도 아니어서 첨정한 것이 매우 범위가 넓은데, 돈이 있는 사람은 돈 5, 6민(緡)을 바치고서면하고 있습니다.” ➝ 선무군관포 <영조실록 - 박문수가 영조에게 보고한 균역법의 폐단>3) 잡세 - 어장세, 선박세 등(3) 각 아문이나 궁방에 거둔 어세•염세•선세를 균역청에서 관할 (4) 결과 - 농민 부담의 경감 , 지주 부담의 증가, 어느 정도 균등은 해짐(5) 하지만 폐단은 재현되었다. 1) 인징, 족징 등 2) 사이비 양반 대량 창출    “이 법이 시행된 후 바닷가 백성의 원성이 하늘까지 이르고 여러 사람들의 원망이 들끓었기 때문에 신이      몇 차례 상소하여 ~ 부족해진 경비를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아 충당하느라 오히려 그 폐단이 심하니, 신의      생각에는 가호(家戶)별로 세금을 거두거나 토지에 세금ㅇ르 부과하는 것만 못한 것 같습니다.” –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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